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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랑> 그녀 - 이자연 개인전

실천예술 두눈 2008. 2. 29. 12:58


그녀  - 이자연 개인전
2008.2.27 ~ 3.4

성보갤러리




불편한 사랑

이자연의 <그녀>에 부쳐

“언젠가 멀리서 걸어오는 어린 소녀아이를 보고 나는 반갑게 손짓을 하였지요. 그러나 아이가 방긋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그 아이가 내가 상상했던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가 아닌, 정상이 아닌 기이한 모습의 장애아임을 알아보았고 순간 내 온 몸의 세포는 쭈뼛 일어서는 것만 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이자연_그녀_광목천, 파라핀, 먹물_70×170×30cm_2006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콘테_150×100×80cm_2007




이자연의 신작 ‘그녀’는 첫 번째 개인전 ‘나의 육체는 나의 영혼을 잠식한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전의 ‘그녀’들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하여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인체의 형상들이었다. 2008년 새로 선보인 ‘그녀’ 시리즈에서 작가가 표현한 여성상은 온전한 인간의 형상이 아닌, 상체는 여성이지만 하반신은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반인반수’이다. 그리고 이 ‘여성-개’의 형상을 한 그녀들은 우두커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채찍질을 당한 듯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방치되어 누워 있으며, 혹은 온몸에 곰팡이가 핀 채 썩어 들어가고 있다. 그녀들은 모두 눈이 멀거나 입이 제거되어 있어, 외부를 향한 시선을 박탈당하고 언어를 잃어버린 상태다.



그리고 작가는 이 모든 ‘여성-개’들을 푸르른 잔디 위에 진열-display를 해 두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가롭고 평화로운 초원 위에서 여성들이(혹은 개들이) 노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푸르름이 가짜의 잔디이고 그 위에 노닐듯이 보이던 여성의 형상들은 불완전하고 상처입고 학대당한 상태로 시선과 언어를 잃어버린 채 영원히 굳어버린 것만 같은 그러한 존재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날것에 가까운 배경의 초록빛과, 흑백사진을 연상시키는 형상의 회색빛 톤의 대비는 마치 지금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오버랩이 되는 것처럼 기이한 인상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정경은 다분히 환상적이며, 노니는 듯한 형상들의 이미지는 다분히 나르시스적으로 자족적이고 한가롭다. 그리고 동시에 지극히 외설적이다.




작가가 처음에 여성의 모습을 ‘개’의 모습에 비유하기 시작한 것은 ‘주인’으로 상징되는 어떤 대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기다리고 복종하는 그러한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작가는 자신만을 의존하고 따르는 자신의 애완동물을 보면서 작가 자신과 동일시하며 공감과 측은지심을 느꼈다. 작가에게 ‘주인’으로 상징되는 어떤 대상이란, 그녀가 사랑하는 한 남성일수도 있고, 지배와 보호를 동시에 가하는 그런 관계에 놓인 어떤 누군가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작가가 꾸는 꿈일 수도 있고, 사회적 시선이나 권력일 수도 있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명명할 수 없는 그 존재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자신의 감정적 고통, 그리고 상실감을 작가는 ‘여성-개’의 모습을 빌어 고스란히 조각적 형상에 담았다. 그리고 작가의 감정은 애완동물의 몸짓을 통해 형상화되며 고통은 육체의 상처로 표현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드러난 ‘여성-개’ 의 형상은 오히려 ‘암캐’처럼 보이며, 남성 가해자의 새디즘적 변태성욕을 충족시켜주는 외설적인 성적 대상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내가 작가의 작품을 두고, ‘암캐’의 형상이라느니 혹은 남성의 ‘외설적인 성적대상’으로서의 이미지이니...하고 말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나 또한 한 명의 여성으로서, 이자연의 ‘여성-개’의 형상으로 대변되는 작품의 심적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통속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적 시선의 힘-오히려 나 자신이 저항해야만 하는 그러한 시선-에 굴복하니 말이다. (우리의 정체성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가)





이자연의 ‘그녀’들, 학대당하고 널부러진 그 암캐들이 작가의 자기비하 혹은 여성 비하의 표현이라고 보아야만 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적 고통이나 욕망을 작품을 통해 솔직하게 표현하였고, 그 고통으로 인한 마조히즘적 형상은 오히려 어떤 지점에서는 외부로 향한 고발과 저항의 요소가 깃들여져 있다. 하지만 그 저항은 모호하게 나른하고 무기력하여, 그 모든 고통의 외침마저도 하나의 이미지와 환영 속에 침잠하여 마치 영원한 침묵 속으로 박제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침묵이란 마비의 상태와 같아서 고통마저 방치되고 어느새 부터인가는 자신의 일부분처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은 우리를 슬픔과 우울함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수채물감_60×130×50cm_2008


“슬픔은 그것이 욕구불만을 일으키기 때문에 적대적이라고 상상된 타자에 대항하는 숨은 공격이라기보다는, 상처받고 불완전하며 텅 빈 원초적 자아의 신호이다. 그의 비애는 양면 감정을 품은 그 대상을 향해 비밀리에 계획한 복수나 과오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나르시스적인 우울증 환자에게 슬픔은, 더 정확하게는 타자가 없기 때문에 그가 집착하고 길들이고 애지중지하는 대상의 대용물이다.”(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글 중)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콘테_80×60×120cm_2006

이자연의 <여성-개>의 형상들은 마치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혹은 자신의 고통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기억 속에 가두어 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과거의 그러한 우울한 기억들만이 소중한 재산인 양 멋지게 전시하고 관객들 앞에 자신의 헐벗음을 display하는 것이다. 그러한 우울한 욕망은 아마도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여 줄 대상이 없기에 작품이라는 물신으로 몰입하고 노출하는 변형된 성욕의 한 측면일 것이다. 폐쇄적이면서도 동시에 노출된 성보 갤러리라는 이 공간은 우울한 한 인간이 애지중지하고 길들이던 슬픔의 모습들을 ‘여성-개’라는 형상을 빌어 관객들의 사랑을 갈구하며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구애의 현장이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한 학대를 노출함으로서 타인의 시선을 학살하는 살육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자기에 대한 증오는 타자에 대한 증오이고 그 증오는 생각지도 않은 성적 욕망을 지닌 전파인 것이다.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수채물감_2008

나는 이자연의 3인칭으로 대변되는 ‘그녀’가 작가 자신의 모습임과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그러한 ‘그녀’ 혹은 ‘나’임을 본다. 작가의 ‘여성-개’ 형상들의 시선을 박탈당하고 언어를 박탈당하고 홀로 직립하기를 박탈당한 그 상태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족적으로 노니는 그 모습들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나에게 끊임없는 서걱거림과 불편함을 가져다 준다.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콘테_100×50×120cm_2007


그리고 그 불편함이란 자신의 헐벗음을 자학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그 헐벗음을 다시 대상화하여 비하하고 학대하는 이중적 시선에 대한 불편함이며, 또한 이 모든 것에 대해 지극히 무감각하고 무심해져버린 나의 현실에 대한 불편함이다. 또한 “이것은 사실이 아니야. 그렇게 될 순 없어!”라고 자신감 있게 외치고 저항할 수 없는, 조국을 잃은 나의 시선과 조국을 잃은 나의 언어에 대한 불편함인 것이다.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수채물감_2008

나는 이 자연의 <그녀> 연작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증오, 동시에 타인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교묘히 결합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 <여성-개>의 형상들을 보며 관객들은 그것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자연의 <여성-개>의 형상들은 불편함으로 다가올 것이며, 뒤통수를 잡아당기며 우리의 마음을 모호하게 교란시키는, 시선 밖으로 없애버리고 싶은 불쾌한 흉물들일 것이다. 앞서 작가가 겪은 장애 소녀를 보았을 때의 경험담을 기술한 것은 이자연의 작품 또한 다분히 그러한 경험을 관객들로 하여금 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자연_그녀_석고, 먹물, 콘테_ _2008

타인의 장애를 발견했을 때의 불쾌감과 동시에 자신의 장애를 발견했을 때의 움찔함. 아마도 바로 그 모호한 불편함의 지점에 작가가 반인반수의 <여성-개>를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메시지는 작가 또한 스스로에게도 앞으로 끊임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질문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이자연의 관객들에 대한 ‘불편함을 통한 사랑의 방법론’인지도 모르겠다. “자, 나는 이러합니다. 당신들은 어떠합니까? 지금 이러한 나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상상합니까? 당신은 아무런 장애 없이 온전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고 행복합니까?”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그런 ‘불편한 사랑’ 말이다. _ 손 정 은 (작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이자연_그녀_먹물,콘테_26 x 37cm_ 2008



성보갤러리_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약도(관람시간10:00~18:30)
02.730.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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