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공간 앞선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변대용은 유사한 형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물론 전시마다 접근했던 주제들이 다르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일관된 형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빈 용기들 외형에 색을 입힌 후 전시장 바닥 곳곳을 메우고, 특정한 형상의 조각 작품 두세 점 정도가 놓여있는 구성을 취한다. 물론 전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이 조각 작품을 먼저 두고, 주변에 색이 칠해진 빈 용기들을 깔았을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이 사실은 이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조각 작품은 전체 구성의 중심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각 작품들은 긴 시간의 노동과정을 통해 완성되었지만, 그래서 형태적으로는 완벽하지만, 기이하거나 결여를 안고 있다. 먼저, 2미터 높이의 선글라스를 끼고 장화를 신고 있는 두루미-인간은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질적인 결합은 오히려 안정된 느낌을 준다. 원래 새의 다리가 갖는 불안함이 인간의 두 다리를 통해 보완되는 것처럼 보인다. 두루미-인간과 마찬가지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백곰도 매우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형태적으로 안정되었지만, 이 두 조각 작품은 잘못된 현실에 대응해야하지만 그것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폭발하는 형상을 보여주는 조각 작품은 좀 더 모호하다. 이 작품은 두 조각작업에서 보여지는 안정감보다는 폭발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것은 수동적 상황, 즉 자신의 자율적 의사결정권을 잃어버린 상황들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으로 보인다. 팽팽한, 긴장된 순간이 관객들에게 전이되는 순간, 이 작품의 의미를 획책한다. 그런데 무수히 많은 용기들과 특정한 조각 작품의 만남은 사실상 같은 층위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혀 다른 층위의 작품들이 왜 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것이 변대용이 구성하고 있는 공간을 새롭게 보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흰색 부직포 위에 함께 놓여진 조각들과 붉은 색을 입은 빈 용기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조각 주위에 포진하기도 하지만 분할되어 있기도 하다. 빈 용기들은 조각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익명인, 그럼에도 조각 작품에 비해 훨씬 자율적인 사물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조각 작품들이 전통적인 조각의 조형언어와 정신분석학적인 병치를 통합시킨 것이라면, 이들 하나하나는 작품으로서 혹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오히려 작가의 고된 노동이 배제된 일련의 빈 용기들은 다시금 ‘작품’에 대한 경계를 의문에 부치게 된다. 또한 그것들은 개별적인 서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형태를 구성할 때에만 의미를 발현한다. 만약 그들이 조각작품들을 좀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시디스플레이를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면, 무수한 아우성들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익명의 소란스러움이 시장과 자본에 꽉 막힌 예술의 숨통들은 아닐까. 자기 완결적 몸과 서사를 갖는 조각 작품보다는 의미를 찾기 어렵지만, 그것 자체로 강렬함을 드러내는 것들, 이것들이 오히려 그가 구축한 세계가 여타의 조각전들과 구별지어지는 지점은 아닐까.
분명 변대용은 일련의 전시를 통해 이전에 그가 구성해왔던 일련의 조각을 놓는 방식과는 변별지점을 마련했다. 작가는 자신의 주된 서사를 구축해 왔던 조각과 함께 설치작업을 믹스했다. 이러한 이중적인 결합은 때때로 조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완결된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 어려워져버린, 그래서 관객들의 시선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은 분산된 전시의 꼴을 만들어 놓았다.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전시공간의 작품들을 그저 관조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 놓은 그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세련된 작품과 전시공간의 딱딱함을 벗어던진 그 곳에서, 미술‘시장’의 활로 모색이 아니라 ‘미술’의 활로를 모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_ 신양희(문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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