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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눈 제 작업실에 기증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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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눈 술잔 요렇게 해서 마시면 여러명이서 각각다르게 어떤비율이 좋을지 재미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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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아주 오래전 서구에서 유행한 양식을 다시 내 놓을 때는 그들과의 분명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기법의 나열이나 닳고 닳은 유명 캐릭터의 무한 반복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오늘날의 정신적 의미와 유심성이 이입되어야 한다. 그래야 흔히 말하는 '다름'이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따로 돈다. 주구장창 서구 망자의 초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개성이 실종된 그림을 그려대고 있다. 문제는 그 결과물들이 마치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대표하는 창(窓)이자 성격을 규정짓는 기준점, 혹은 가능성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젊잖게 말해 변형된 의고주의에 불과한 양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미술판의 허약함은 차치하고라도, 철학적 토대 없이 알량한 손기술에 의해 베껴지는 일상과 예술의 고상함을 가장한 위선을 두고 한국적이니 독자성이니 뭐니 하는 궤변까지 읊어지고 있음은 진정한 코미디다. 차라리 카노푸스 단지에 절을 하라. 어쩌면 그게 더 진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
예술의 사회적 성격을 사회변혁의 도구 내지 사회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려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개인'이 새롭고 절대적인 키워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예술과 사회의 연결 관계는 희박해진 듯했다. 지나간 시대가 집단의 목표를 앞세워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억압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회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고유성이 예술의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은 개인의 고유성이 사회적 차원과 적대적이며 오늘날 모든 예술이 사적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술이 사회의 반영이라는 리얼리즘적 시각에 동조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질문은 이렇게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예술과 사회, 혹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오늘날 어떻게 만나는가?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이라는 카테고리의 명료함이 붕괴된 시대인 한편 사회적인 것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일상과 감각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시대이다.... -
→ 두눈 손톱기부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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